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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문화

백중절 (백종절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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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실장 작성일17-06-28 18:55 조회325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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百中日{7월 보름: 中元(중원)}은 여타 보름날 명절(名節)과 같이 고래(古來)로 남녀가 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놓고 가무(歌舞)를 즐기면서 하루를 놀았습니다. 지방에 따라 씨름 대회를 즐겼는데, 사찰(寺刹)의 승려(僧侶)들과 머슴들까지 다양한 풍속(風俗)을 즐겼습니다.

村女採種 - 마군후백중(百中)이라는 말은 '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 갖추었다'는 의미의 백종(百種)의 뜻에서 유래(由來)된 것으로 보는데, 이 무렵은 과일, 채소, 곡식 등이 왕성하게 나는 철이기에 백종(百種)의 의미로 풍속(風俗)이 생겨난 것입니다. 일부 지방에서는 잘 익은 과실(果實)을 따서 사당(祠堂)에 먼저 올리는 천신(薦新) 차례(茶禮)를 지내기도 합니다.

 백중일(百中日)의 사찰(寺刹) 재(齋)는 아직까지 큰 명절(名節)로 행해집니다. 불교(佛敎)에서의 백중일 유래(由來)는 효성이 지극한 목련비구(目蓮比丘)가 지옥에 떨어진 모친(母親)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오미(五味)를 가진 음식과 온갖 과실(果實)을 갖추어 부처님께 공양(供養)을 했다는 <우란분경(盂蘭盆經)>이라는 불경(佛經)의 이야기에서 연유(緣由)하는데, 이 때 백과(百果)가 지금의 백중(百中)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.
 신라(新羅) 시대에 벌써 사찰(寺刹)에서의 백중 행사가 있었고, 불교(佛敎)를 숭상(崇尙)한 고려(高麗) 시대에는 백중일에 우란분회(盂蘭盆會 ; 혹은 우란분재)를 열어 속인(俗人)들도 공양(供養)을 할 정도였으나 조선시대(朝鮮時代) 이후는 승려(僧侶)들만의 행사가 됩니다.
[ 齋(재) 재계하다, 불공 ]

 우리 나라 풍속으로 백중일(百中日)을 망혼일(亡魂日)이라고도 하는데, 민가(民家)에서 달이 뜨는 밤이 되면 과일, 채소, 술, 밥 등을 차려 돌아가신 부모[망친(亡親)]의 혼(魂)을 불러들여 제사(祭祀)를 지낸다 해서 망혼일(亡魂日)이라 합니다.

 이 시기는 농사(農事)에 김매기를 거의 끝내고 추수(秋收)를 기다리는 시기이기에 농촌에서 불필요한 농기구(農器具)를 씻어 손질해 둔다는 의미에서 '호미씻이'라 합니다. 또한 흥겹게 하루를 즐기는데, 과거(過去)에는 동네 머슴들을 위해 하루를 쉬게 하여 위로(慰勞)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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